[ 24년 전 ]
“학교 다녀왔습니다아!”
학교에서 돌아오는 서민의 목소리가 경쾌하다. 원래 활발한 아이기도 하지만 오늘따라 왠지 더 신이 나 있는 것 같았다.
“우리 아들 왔어? 어서 들어와 앉아. 엄마가 맛있는 거 줄게.”
엄마는 부엌에서 나오지도 않은 채, 신발주머니를 현관문 옆에 던져 놓고 운동화도 아무렇게나 벗어던지고 뛰어 들어오는 초등학교 5학년짜리 아들에게 말했다. 서민은 집 안으로 뛰어 들어오다 말고 다시 뒤 돌아 현관으로 향했다. 현관 앞에 선 서민은 밖을 향해 말했다.
“야! 뭐해? 어서 들어와.”
엄마는 서민의 말소리에 부엌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응? 누가 왔니?”
활짝 열린 현관에 한 남자아이가 수줍은 듯 들어왔다.
“서민아! 누구야? 엄마 첨보는 애네!”
“응, 엄마! 오늘 우리 반에 전학 온 애야. 내 짝이다.”
엄마는 ‘짝’이라는 소리에 관심 있게 현관 쪽을 바라봤다. 서민의 예전 짝이 전학 간 후로 짝 없이 두 달 넘게 지내 왔었다. 두 달이면 자리를 바꿔서라도 짝 없는 서민에게 새 짝을 만들어 줄만도 하건만 어쩐 일인지 서민의 담임 선생님은 자리도 안 바꾸고 서민을 홀로 지내게 내버려 두었다. 서민이 시험지에 100자를 안 받아오면 이상하다 할 정도로 공부를 잘 하기는 하지만 학교에 발길이 뜸한 엄마 탓에 혹시 차별 대우를 받는 건 아닌지 속상해 하고 있었다. 엄마는 다른 엄마들처럼 뽀르르 학교에 달려가 담임 선생님과 이야기도 나누면서 선물이나 봉투라도 전해주고 싶었지만, 그럴 형편이 못 돼 저절로 학교에 발길이 뜸해지게 되었다. 다른 엄마들은 학교에 가서 여자 선생님에게 여성잡지를 선물이라고 주며 책속에 촌지를 슬쩍 끼워 넣어 준다고 들었다. 혹은 케이크를 사서 초가 든 봉투 안에 돈을 넣어 주기도 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엄마는 ‘언감생심 우리 애들도 못 먹이는 케이크를······. 촌지는 나쁜 거야. 우리 애들은 그런 거 없어도 공부 잘해.’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학교를 외면해왔다. 그래서일까? 서민이 두 달 넘게 짝 없이 혼자 있는 것이······. 내색은 안했지만 속으로 은근히 걱정하고 속상해 하던 차에 서민의 ‘짝’이라는 말은 반가움보다도 더 큰 울림이 되어 엄마의 심장을 때렸다.
“야, 뭐해? 신발주머니 거기다 놓고 들어와.”
서민은 현관 앞에서 머뭇거리는 새 짝을 재촉했다.
“안녕하세요오.”
서민의 새 짝은 부엌 밖으로 고개를 내민 엄마에게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했다. 한 눈에 봐도 정말 숫기 없는 아이였다.
‘남자 애네!’
엄마는 짝이 당연히 여자 아이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내아이가 들어오자 의외였다.
‘사내아이면 어떠냐. 어색해하지 않고 더 친하게 잘 지내겠지.’하며 아들의 새 짝을 보았다.
“그래. 어서 와라. 어서 들어와서 앉아. 아줌마가 김치 부침개 맛있게 만들었으니까 같이 먹자.”
엄마는 인자한 웃음으로 숫기 없는 서민의 짝을 맞이했다. 두 사내아이들이 거실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작은 공간인 부엌 앞에 자리하고, 엄마는 김치부침개가 놓인 밥상을 아이들 앞에 내려놓았다.
“서정아, 서윤아! 나와. 부침개 먹자.”
엄마가 큰 소리로 말하자 방문이 열리며 두 여자 아이가 쪼르르 나와 밥상 앞에 앉았다.
“엄마! 이 오빠 누구야?”
서민의 연년생 동생인 서정이 물었다.
“으응. 오빠네 반에 새로 전학 왔는데, 오빠 짝이래. 인사해야지.”
“안녕?”
서정이 무뚝뚝하게 인사했다.
“응.”
서민의 짝은 다 죽어가는 소리로 대답했다.
“안녕, 오빠!”
초등학교 1학년인 서윤은 손까지 흔들면서 귀엽게 인사했다.
“응.”
하지만 서민의 짝은 이번에도 들릴락 말락 한 소리로 대답했다.
“그런데 우리 아들 짝은 이름이 뭐니?”
“강철이, 이·강·철!”
강철 대신 서민이 얼른 대답했다.
“강철이? 참 건강한 이름이네.”
엄마는 웃으며 말했다. 서민에게 오랜만에 짝이 생겼다는 게 너무 좋아서 계속 웃음이 나왔다.
“강철이 집은 어디야?”
엄마의 물음에 이번에도 강철 대신 서민이 냉큼 대답했다.
“엄마! 개미문방구 없어진 데 있지? 그 집이 얘네 집이야. 거기 문방구랑 복덕방이랑 세탁소랑 다 합쳐서 슈퍼마켓 만든대. 얘네 아빠가······.”
그 이층집! 목 좋은 자리라 집값도 꽤 하겠다고 생각했었다. 1층은 상점이고 2층은 주인인 노부부가 살던 집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할아버지는 아들네로 간다고 그 집을 팔아버렸다. 덩달아 1층에서 장사하던 사람들도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했다. 그 집을 사서 1층에 슈퍼마켓을 할 정도면 부잣집이라고 엄마는 생각했다.
아이들이 젓가락으로 부침개를 뜯기 시작했다.
“야! 어서 먹어. 울 엄마 부침개 진짜 맛있다.”
서민은 아직 젓가락도 못 들고 있는 강철에게 권했다. 강철은 아무 말도 없이 눈길은 아래를 향한 채 조용히 젓가락을 들었다. 정말 수줍음이 많은 아이라고 엄마는 생각했다.
“엄마! 강철이 오빠 속눈썹 디게 길다.”
난데없이 서정이 부침개를 먹다 말고 말했다.
“어머! 정말이네. 얘! 너 정말 속눈썹 길고 짙구나. 가만 보니까 얼굴도 참 예쁘게 생겼네. 아줌마는 이렇게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예쁜 애 첨 본다. 어머나! 아줌마 때문에 잘 못 먹나보다. 미안, 미안. 아무 말 안할 테니까 많이 먹어. 부엌에 더 있어.”
엄마는 일부러 부엌으로 가 자리를 피해 주었다. 강철은 여전히 고개를 떨어뜨린 채 조용히 부침개를 먹었다.
서정은 부침개를 연신 입에 집어넣으면서도 눈길은 계속 강철을 향했다. 서정에게는 강철이 슛돌이처럼 보였다. 슛돌이는 요즘 서정이 빠져있는 만화의 주인공이었다. 저 수줍은 모습은 어쩌면 거짓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평소에는 수줍고 조용한 사람이었다가 막상 경기가 시작되면 바람처럼 공을 몰고 골대 앞으로 뛰어가 상대 골키퍼까지 함께 그물을 출렁이게 만들 강력한 슛을 날릴 거라고 생각했다. 서정은 만화를 너무나 좋아하는 아이였다.
아이들이 부침개를 네 장이나 먹어치우고 나서 하나밖에 없는 방으로 사라졌다. 엄마는 빈 접시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밥상을 치웠다. 부침개 접시와 반죽 그릇 등을 설거지 하고 있는데, 갑자기 서민과 강철이 문을 벌컥 열고 나와 신을 신었다.
“너희들 어디 가니? 놀이터 가?”
“아니, 강철이네 집에······. 강철이네 집은 훨씬 넓고 장난감도 많대.”
아이들은 무엇에 쫓기기라도 한 것처럼 뒤도 안돌아보고 후다닥 달려 나갔다.
‘그래. 우리 집은 참 좁지!’
엄마는 아이들에게 변변히 놀 자리도 못 만들어 준 게 새삼 미안했다. 항상 미안했다. 오늘은 서민에게 그토록 바라던 짝이 생긴 날인데도 밖으로 뛰어나가는 두 아이들을 보니 갑자기 명치에서부터 목구멍을 따라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새 짝은 부잣집 아이다. 우리 집이 가난해서 서민이 따돌림이라도 당하면 어쩌지? 그래도 짝꿍인데, 오래오래 친하게 지냈으면 하고 엄마는 바랐다.
[ 21년 전 ]
“서민이는?”
놀이터 벤치에 앉아있던 서정에게 다가온 강철이 다짜고짜 물었다. 서정은 보자마자 인사도 없이 퉁명스럽게 오빠를 찾는 강철이 조금은 얄미웠다.
“앉아.”
서정이 옆자리를 손으로 툭툭 치며 말했다. 강철은 집안에서 입고 있던 얇은 트레이닝 점퍼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잔뜩 움츠리며 앉았다.
“우리 오빠 안 나와.”
“뭐?”
두리번거리며 서민을 찾던 강철이 놀라 서정을 쳐다봤다.
“내가 오빠 나오게 하려고 울 오빠 핑계 댄 거야.”
서정은 안 나오는 목소리를 억지로 쥐어짜내 모기 소리 만하게 말했다.
“왜?”
서정을 쳐다보는 강철과 달리 서정은 강철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서정은 고개를 아래로 향한 채 뜸을 들였다. 서정의 눈에 강철의 발이 들어왔다. 서정이 전화로 ‘우리 오빠가 잠깐만 보재.’라고 말했더니, 강철은 정말로 ‘잠깐만’ 보려고 했는지 2월의 혹한 속에 얇은 트레이닝 점퍼를 입고, 양말도 신지 않은 채 슬리퍼를 끌고 나왔다. 서정의 눈에 들어 온 강철의 발가락들이 꼼지락꼼지락 춥다고 아우성이었다.
서정이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자 강철은 일어섰다.
“저기······.”
서정의 한 마디가 막 발을 떼려는 강철을 붙잡았다. 강철은 여전히 아래를 향하고 있는 서정의 뒤통수를 내려다보았다.
“며칠 있으면 나 중학교 입학하잖아. 오빠랑 같은 중학교에 다닐 건데······.”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말을 꺼낸 서정이 다시 말을 멈추고 뜸을 들였다.
“근데?”
강철은 여전히 시큰둥하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강철의 말투 때문에 서정의 말들은 목구멍 밖으로 감히 나올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서정이 다시 억지로 말들을 밀어냈다.
“뭐, 그냥. 학교에서 자주 만나면 인사도 잘 해주고······. 나는 중학교가 처음이니까 잘 모르는 거 있으면 오빠가 잘 가르쳐 주면 좋겠고······.”
“서민이가 나보다 공부 잘해. 서민이한테 물어봐.”
강철은 다시 퉁명스럽게 말하고는 곧장 집으로 총총걸음을 뗐다. 멀어져가는 강철의 슬리퍼 소리 속에 ‘추추추추······.’하는 강철의 겨울 날씨에 대한 불평도 섞여 있었다.
강철이 집으로 향하자 비로소 서정은 고개를 들어 강철을 바라볼 수 있었다. 총총히 뛰어가는 뒷모습만······. 강철의 모습이 놀이터 밖으로 사라지자 서정은 정신이 들었다. 강철이 옆에 있을 땐 도대체 누가 강철에게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정신이 아득했다. 집에서 나올 때만해도 무슨 말을 어떻게 할지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되새겼었다. 그런데 막상 강철을 보니 서정의 정신은 까마득해지고 해야 할 말들은 어디로 숨었는지,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말들만 비집고 나왔다.
서정의 눈에 비친 놀이터가 울렁거렸다. 울렁거리던 놀이터가 한데 모이더니 서정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며칠 전, 사나흘 따뜻했을 때 성급하게 밖으로 나온 개나리꽃들이 부들부들 떨었다. 서정은 손으로 볼을 훔쳤지만 떨고 있는 개나리를 보자 또 눈물이 흘러내렸다. 며칠 전 드라마에서 봤던 여자가 생각났다. 남자가 떠나자 그 여자는 주저앉아서 하염없이 울었다. 서정은 그 여자를 떠올리며 함께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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