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만 편집 작업 중에 바뀔 수도 있다.
죄송합니다, 심완선님! ㅠㅠㅠㅠㅠ
“구태량(久太良)과 구태라(仇台羅)는 음역(音譯)을 하여 같은 나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역사서에서는 백제를 쿠다라(くだら)라고 표기했는데, 이는 구태량의 음을 일본어로 쓴 것입니다. 구태는 우태와 소서노의 장자입니다. 우태가 죽고 소서노가 주몽과 혼인한 후 주몽이 예전에 예씨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유리를 태자로 세우자 구태가 동생인 온조와 함께 어머니 소서노를 모시고 남쪽으로 내려와 나라를 세웠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결국 구태는 비류와 동일인이라고 보는 게 맞습니다.”
낙싱은 홀로그램에 한국, 중국, 일본의 오래된 역사서를 띄우며 설명했다. 낙싱이 역사서의 해당 부분에 동그라미를 쳐 가며 열정적으로 설명하는데도 나는 좀처럼 낙싱의 설명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자꾸만 흔들리고 화면 일부가 깜빡이는 홀로그램이 내 눈을 어지럽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네는 부족한 우리나라 역사서를 보강하기 위해 중국과 일본의 역사서를 많이 참고하면서 한문을 음역한 부분이 과하게 많은 것 같네. 구태라의 라(羅)를 나라라는 의미로 쓴 것은 맞는 부분이야. 하지만 구태량의 량(良)을 같은 의미로 보는 것을 글쎄……. 좀 억지로 끼워 맞춘 느낌이 강해. 자네는 구태를 우태의 아들이며 비류와 동일인물이라고 설명했는데 중국 주서(周書)에서는 우태와 구태를 동일인으로 말한 기록이 있어.”
“교수님! 중국 수서(隋書)를 보면…….”
낙싱이 다시 열띤 설명을 시작하려는데 내가 한 손을 들어 그의 말에 제동을 걸었다.
“중국 역사서 중에는 근초고왕을 백제의 시조로 말하는 경우도 있어. 백제와의 통교가 늦게 이루어졌기 때문일 수도 있고, 백제에 뚜렷한 건국 시조 관념이 없었다고 볼 수도 있고, 중국 역사서가 백제 건국 후 한참이 지나고 나서 기록됐기 때문일 수도 있어. 우태, 구태, 비류, 온조 등 그 집안 계통도를 확실히 하고 백제와 부여, 백제와 마한의 관계를 더 조사해서 다음에 계속 이야기하자.”
나는 말을 마친 후 일방적으로 연결을 끊었다. 낙싱이 거실에서 사라졌다. 낙싱의 졸업논문 주제는 ‘백제의 시조를 온조로 보는 게 타당한가?’였다. 논문을 위해 낙싱은 대학생 수준을 능가하는 연구를 하고 있었다. 중국, 일본의 역사서까지 뒤져가며 열심히 하는 그 열정은 인정할 만했다. 그러나 내가 낙싱의 연구 자세에서 불만스러운 점은 한문으로 기록된 옛 문헌들을 음역(音譯)과 훈역(訓譯)을 오가며 제 입맛에 맞춰 해석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낙싱의 잘못된 자세는 지도교수로서 내가 마땅히 바로잡아주어야 하는 부분이었다. 특히, 낙싱처럼 노력하는 학생은 잘 다듬으면 훌륭한 역사가로 만들 수 있다는 믿음과 사명감까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도 낙싱과의 연결을 서둘러 끊은 이유는 바로 고장 난 홀로그램 모듈이었다. 안정되지 못하고 울렁거리는 홀로그램은 내 집중력을 흩뜨릴 뿐만 아니라 짜증까지 치밀어 오르게 했다. 계속하다간 낙싱에게 화를 낼 것만 같았다.
‘저걸 언제 설치했더라?’
홀로그램을 설치한 게 언제인지 기억해 보려했지만 당최 떠오르지 않았다.
“지니!”
나는 생각하는 걸 그만두고 홈케어시스템을 불렀다.
“네, 주인님!”
지니가 대답했다.
“홀로그램 AS.”
“홀로그램 AS를 신청하겠습니다.”
몇 초간 조용하던 지니가 신청 상황을 보고했다.
“내일 오후 두 시 방문 가능합니다. 예약할까요?”
“예약해.”
“내일 오후 두 시, 홀로그램 AS 기사 방문 예약했습니다. 더 필요하신 건 없으신가요?”
“지니, 잘 했어. 내일 병원은 오전에 가는 거 맞지?”
“오전 열 시까지 가시면 됩니다. 차는 아홉 시 반에 오기로 했습니다.”
“알았어. 지니 쉬어.”
“네, 주인님.”
지니가 조용해졌다. 홈케어시스템의 이름 지니는 내가 어렸을 때 본 영화 ‘알라딘’에서 따 왔다. 영화 속 램프의 요정 지니를 본 이후로, 하는 일이 막힐 때마다 내게 지니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나이가 들어서 집안에 관리시스템을 구축한 후 시스템 이름을 지니로 지었다. 나를 주인님이라고 부르도록 세팅하니 램프의 요정이 옆에 있는 것 같은 즐거운 착각을 할 수 있었다. 지니를 집에 들인 지 오십 년은 넘은 것 같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오래 된 것들은 모두 정확하지 않다. 굳이 정확히 기억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자질구레한 것들 때문에 기억력을 낭비하고 싶지가 않다. 오늘 남은 일정을 기억하는 것도 버거울 지경이다.
‘뇌도 바꿔야 하나?’
나는 처음 치매 치료를 받은 게 언제인지 생각해 보았다. 60대 초반이었다. 건강검진에서 치매의 위험이 있다는 결과를 받고 약물치료를 시작했다. 오십 년 정도 수술 없이 약물치료만으로 치매를 다스려왔다.
‘이젠 약발도 안 받는 건가?’
요즘 들어 기억력이 감퇴하는 게 확실히 느껴졌다.
‘뇌는 건들고 싶지 않은데…….’
온몸의 장기를 다 인공장기로 교환해도 뇌만큼은 내 것으로 유지하고 싶었다. 몇 년 전부터 의사가 인공뇌를 권유했지만 고집스레 마다하고 약물치료로 버텼는데, 이제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 인공뇌에 대한 생각을 하니 이젠 내가 정말 늙었다는 느낌에 마음 한구석이 헛헛했다.
“주인님!”
지니가 나를 불렀다.
“왜?”
“예나가 오고 있습니다.”
“아, 참! 가장 중요한 걸 잊었네. 얼마나 왔지?”
“지금 나가시면 됩니다.”
“그래. 간식 준비해 줘.”
“네, 주인님.”
현관문을 열고 나가자 지니의 예측대로 예나가 드론에서 내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예나가 안전하게 내린 것을 확인한 드론은 그대로 날아올랐다. 예나는 나를 향해 양팔을 벌리고 뛰어왔고, 나는 얼굴을 활짝 펴고 예나를 안아 주었다.
예나는 샐러드 한 입에 불만 한 마디씩을 내뱉었다.
“다른 애들은 엄마, 아빠가 펭귄잼 준단 말이야. 그게 얼마나 맛있는데…….”
“펭귄잼은 쪽쪽 빨아먹어버리잖아. 달기만 달고……. 샐러드는 씹는 맛이 있으니 더 재밌잖아. 고기 씹는 맛이랑 과일 씹는 맛이랑 채소 씹는 맛이랑 다 다르니까 얼마나 재미있어?”
예나가 먹고 싶은 건 오로지 펭귄잼이었다. 화학물질로 합성한 몇 가지 영양소에 여러 가지 인공 감미료를 첨가해 펭귄이 그려진 기다란 튜브에 담아 쪽쪽 빨아먹을 수 있게 만든 젤이었다. 요즘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간식이었다. 바쁠 땐 입에 물고 일을 할 수도 있고, 먹는다는 행위 자체가 귀찮은 사람들은 몇 개만 빨아먹으면 필요한 영양을 섭취할 수 있었다. 나는 아이에게 그런 저급한 간식은 절대 먹이고 싶지 않다. 유기농으로 키운 신선한 식재료에 합성 감미료를 전혀 첨가하지 않은 소스를 뿌린 자연스런 먹거리가 성장기 아이들 몸에 가장 좋은 음식이다. 거기에 유기농 과일을 갈아 만든 진짜 과일주스까지 주었건만 예나는 천박한 화학약품 덩어리를 주지 않는다고 불만이 가득하다. 구시렁거리며 마지못해 깨작깨작 먹는 예나를 보니 한숨만 나온다.
“펭귄잼인지 비둘기잼인지는 너희 아빠한테 사달라고 해. 나는 네 건강을 위해서 그딴 건 못 주겠으니까.”
“할머니는 구식이야.”
예나가 원망의 눈초리로 나를 쏘아보며 말했다.
“구식이라는 말은 또 어디서 배웠어?”
“에딘이 백 살 넘으면 구식이래.”
‘구식…….’
심장을 강타하는 말이었다. 예나보다 수십 배나 많이 살아온 내 심장을 여섯 살짜리 예나가 그 한마디로 베어 버렸다. 그래, 구식이라 이젠 머리도 고장 났다. 나는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할머니, 왜 웃어?”
“네 말이 맞아서……. 할머니는 구식이야. 저녁에 너희 신식 아빠 오면 먹고 싶은 거 다 사달라 그래.”
결국, 예나는 간식을 남겼다.
해가 지고 한참이 지나서야 예나의 아빠인 건휘가 왔다. 아빠가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며 TV 앞에서 꾸벅꾸벅 졸던 예나는 아빠를 보자마자 나를 봤을 때처럼 팔을 벌리고 뛰어들었다.
“리나는 언제 온다니?”
나는 예나 엄마의 귀환 일을 물었다.
“1년은 더 걸릴 거 같아요.”
“무슨 가족이 그렇게 오래 떨어져 살아? 예나 두 살 때 갔다. 예나가 엄마에 대한 정은 있겠니?”
건휘는 내 잔소리가 시작될 기미가 보이자 예나를 얼른 안아 들고 뒷걸음으로 조금씩 현관으로 향했다.
“도망가지 마. 몸이 떨어져 있으면 마음도 떨어지는 거야. 머지않아 너희 가족 파탄 날 거다. 리나보고 얼른 오라 그래.”
“회사에선 하루 종일 옆에 붙어 있고요, 매일 밤마다 예나 잠들기 전에 동화책 읽어 주는 건 리나가 다 해요. 너무 걱정 마세요.”
“그깟 홀로그램이 사람이랑 같니? 옆에 있으면서 서로 부대껴야 가족인 거야.”
“할머니가 펭귄잼 안 줬어.”
내 잔소리 지수가 막 상승하던 시점에 예나가 건휘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제 딴에는 속삭였겠지만 그 소리는 내 귀에까지 들려왔다. 건휘는 이 위기의 순간에 말을 돌려 준 예나가 고마운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펭귄잼은 건강에 안 좋다니까.”
내가 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안 그래요. 식약처에서 안전하다고 인증했어요.”
건휘가 항변했다.
“식약처에서는 영양성분이랑 유해 물질만 검사해 보고 판단한 거지. 그런 합성식품보다 자연식품이 훨씬 좋아. 영양도 골고루 있고, 다양한 식감으로 애들 정서 발달에도 좋고…….”
“저도 어렸을 때, 친구들은 다 먹는 에너지바를 안 사주셔서 많이 속상했는데…….”
건휘의 항변은 내 기세에 눌려 흐지부지 수그러들었다.
“그래서 네가 이렇게 건강하게 잘 자란 거야.”
“아! 그건 할머니께 항상 고마워하고 있어요.”
“마음에도 없는 소리!”
나는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정말이에요. 내일은 조금 일찍 올게요. 할머니 생신이잖아요.”
잔소리를 들으며 슬금슬금 뒷걸음질한 건휘는 어느새 현관문이 손에 닿았다.
“생일이 뭐 별거니? 나 때문에 일찍 올 필요 없어. 네 할 일 다 마치고 와도 돼.”
빨리 가고 싶어 하는 건휘의 눈치를 살핀 나는 더 이상 잡지 않았다.
“백열두 번째 생일 미리 축하드려요.”
건휘는 인사하고 얼른 뒤돌아 나갔다.
“할머니는 구식이야.”
현관을 나서자마자 예나가 건휘에게 말했다.
“할머니께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건휘가 예나를 나무랐다. 둘의 대화는 천천히 닫히고 있는 현관문 틈으로 들려왔다.
“에딘이 그랬어. 백 살 넘으면 구식이래.”
현관문이 닫혔다. 예나의 ‘구식’이라는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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